Tag: monopoly
위대한 De Beers
by Hanjun on Feb.12, 2008, under Barrel
오늘은 다이아몬드 독점 회사, De Beers에 대해서 알아 보자.
다이아몬드는 전셰계적으로 보석의 왕으로 인정받는 광물이다. 다이아몬드가 이렇게 보석의 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주원인은 물론 다이아몬드에 으레 붙어있는 매우 높은 가격표 덕분이지만, 사실 다이아몬드는 가격 외에도 보석의 왕에 걸맞는 여러가지 특성들을 갖고 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ㅡ2005년 어느 연구실에서 C60을 만들어 내기 전까지ㅡ 다이아몬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질 중 가장 경도가 높은 물질이었다. (그래서 다이아몬드는 rockwell scale을 비롯한 여러가지 경도 단위에서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이아몬드는 보석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요소 중 하나인 내구성을 가장 잘 만족시키는 광물이란 말이다. 이런 훌륭한 내구성은 영속성으로 직결된다. 아무리 보석이 멋져도 30년 뒤에 그 멋을 잃어버린다면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이기 때문에, 절대 불변의 이미지도 쉽게 얻을 수 있다. 또 다이아몬드는 여러가지 색상이 존재하며, 어떤 색깔이든 최고의 휘광성을 자랑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다이아몬드만큼 최고의 보석 자리에 적당한 광물은 없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런데 다이아몬드가 가진 가장 큰 결점은 희귀성면에서 왕좌를 차지하기엔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다이아몬드는 우리 생각만큼 희귀한 광물이 아니다. 가용 생산량 측면에서 보자면 붉은 사파이어 (루비)가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더 희귀하다. 그런데 다이아몬드는 비슷한 스펙이라면 대체로 루비보다 비싸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그 중심엔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회사이자 백년 이상 독점 시장을 잘 관리해온 De Beers가 있다. 사실 19세기 초만 해도 다이아몬드는 정말로 희귀했다. 루비 같은건 상대도 안되는 정도였다. 사람들은 다이아몬드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다이아몬드가 어디서 나오는지 몰랐다. 알려진 다이아몬드 광산은 한개도 없고, 가끔씩 땅에서 발견되는 다이아몬드가 전부였으니 그 희귀성은 알만하리라. 그런데 19세기 말 아프리카의 Kimberley에서, 그때까지는 상상할수도 없었던 만큼 많은 양의 다이아몬드가 쏟아져 나오는 광산이 발견되었고, 유명한 Kimberley Rush가 시작되었다.
이때 영국에서 건너온 Cecil John Rhodes라는 정말 멋진 분이 계셨다. 이 멋진 분께선 De Beers 농부 형제에게서 다이아몬드가 나오는 땅을 사서 광산을 차렸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바로 Cecil Rhodes의 다이아몬드 광산 주변엔 수십개 이상의 다른 다이아몬드 광산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이 분은 이렇게 생각했다. ‘다이아몬드가 이렇게 대량으로 공급된다면, 결국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폭락하고 광산들은 몽땅 다 망할 것임에 틀림 없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그는 Kimberley의 광산들을 하나씩 인수해나가기 시작한다. Kimberley가 통합 된 후, De Beers Consolidated Mines는 또 다른 지역도 그렇게 통폐합시켰고, 결국 전세계 다이아몬드 공급의 90% 가량을 자사의 통제하에 놓게 되었다. 이제 다이아몬드를 팔 시간이다. 그런데 당시 De Beers의 광고 에이전시였던 N.W. Ayer & Son의 근로자 Frances Gerety는 천재적인 발상을 해냈다. 바로 사랑과 다이아몬드를 동일시한 것. 이러한 개념은 다음 슬로건에 녹아들어 대대적으로 홍보되었다. (이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슬로건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런 논리다. 다이아몬드는 너도 알다시피 조낸 단단하고 따라서 영원하다. 다이아몬드를 장착한 반지를 선물하면 아마 네 사랑도 영원할것이다. 그런데 이런 엉터리 논리는 놀랍게도 매우 성공적으로 전 세계의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 캠페인 덕분에 다이아몬드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고, 회사는 큰 성장을 거두었다. 전세계의 가난한 샐러리맨들이 결혼하기 위해 몇달치 월급을 모아 De Beers에 헌납하기 시작했으니까.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남들이 몇달씩 돈을 모아서 가져다 준다니. 너무 멋지지 않나?
여기서 잠깐 De Beers가 다이아 원석을 시장에 공급하는 방식을 살펴 보자. De Beers는 1년에 10번 London Diamond Syndicate 에서 다이아몬드를 시장에 공급한다. 판매는 Syndicate 멤버와 De Beers 사이에 비공개 입찰식으로 진행된다. De Beers가 멤버들에게 예상 낙찰가를 통보해 주면, 멤버들은 비공개로 입찰 금액을 De Beers사의 계좌로 보낸다. (즉, 선불임) 가장 비싼 가격을 부른 사람이 다이아몬드를 갖게 되고, 나머진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더욱 멋진건, De Beers의 본사는 남아프리카의 요하네스버그에 있다는 것이다. 이게 뭐가 멋질까? 남아프리카공화국엔 반독점법이 없어서 멋지다.
ps. 물론 De Beers가 아직까지도 전세계 원석의 90% 정도를 통제하는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원석 시장보다 완성품 시장의 규모가 몇배 이상 커졌고, 그 대부분은 미국 뉴욕의 다이아몬드 스트리트에서 거래된다. De Beers는 이 시장에 꼭 진출하고 싶었고, 결국 90%에 가깝던 점유율을 60% 까지 떨어뜨리고 반독점법을 피해 미국에 진출했다.
위대한 록펠러
by Hanjun on Feb.11, 2008, under Barrel
록펠러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 록펠러와 그의 멋진 독점왕국 Standard Oil에 대해 알아보자.
록펠러가 Standard Oil 사를 설립한 1870년엔 사실 석유시장이란건 보잘것 없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 당시 석탄은 목재를 완전히 대체하면서 세계 에너지 질서를 재편하고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지만, 석유는 고작해야 등유로 램프를 밝히는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공급부족 이었다. 석유는 석탄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고, 비교적 깨끗한 에너지원이었지만, 그 당시까지만 해도 석유가 많이 매장된 곳을 찾지 못했었다.
당시 대부분의 유정에서는 하루 50~100 배럴 정도의 석유를 생산하는게 고작이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Ghawar 유전의 하루 생산량이 600만 배럴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당시 시장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 시절 사람들은 석유는 그 제한적인 매장량 때문에 도저히 석탄을 대체할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대 번혁이 일어났다. 1901년 미국 텍사스의 Spindletop 에서 하루에 10만 배럴 이상의 석유가 쏟아져 나오는 유정이 여러 개나 발견된 것이다.
이 때를 기점으로 석유산업은 급격한 팽창을 겪게 된다. 그러나 초창기 석유 시장은 그리 안정적이지 못했다. 초기의 석유회사들은 대부분 생산이나 공급 중 어느 한쪽으로만 초점을 맞추었는데, 이로 인해 생산과 공급이 균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석유 시장은 극심한 공급 과잉과 부족을 사이를 오갔고, 유가는 큰 폭으로 요동쳤다. 선물 거래를 도입하여 이런 불안정성을 극복하려 했으나,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상황을 개선시키기란 힘들었다.
이 때 록펠러는 처음으로 석유의 생산부터 공급까지 모든 과정 통합한 회사를 만들 생각을 했다. 이에 따라 Standard Oil은 생산(유정), 정유(정유소), 수송(송유관,유조선), 공급(주유소) 과정을 모두 인수하기 시작한다. Standard Oil은 점차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으며, 이렇게 얻은 돈은 끊임 없이 비용 절감과 생산력 향상 그리고 새로운 유정 개발을 위해 재투자되었다. 결국 Standard Oil은 다른 어떤 기업 보다도 강한 경쟁력을 갖게 되었고, 이 즈음부터 경쟁사가 위치한 곳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 가격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이런 전략에 의해 수많은 경쟁사들이 도산했고, 간신히 살아남더라도 Standard Oil에 인수되거나 카르텔에 동참할 수 밖에 없었다. 1904년에 이르자 Standard Oil은 미국 석유 생산의 91%와 최종 공급의 85%를 손에 쥐게 되었다. 전세계 시장 점유율은 50%에 육박했다. 하지만 Anti-Trust 법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Standard Oil사는 34개의 회사로 쪼개지고 만다.
회사들은 쪼개졌지만 그렇다고 록펠러가 만든 모든 것이 없어져 버린 것은 아니다. Standard Oil에서 쪼개진 기업들 중 상당수는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잠시 이들을 살펴보자.
- 당시 Standard Oil의 지주회사였던 Standard Oil of New Jersey (SONJ)는 Esso가 되었고, 이후에 사명을 Exxon로 바꾸었다. 순 자산의 9%를 보유하고 있던 SONY(Standard Oil of New York)는 후에 Mobil이라 개명했고, 1999년 세계 1위 자리를 지키던 Exxon이 당시 4위 기업이던 Mobil을 흡수합병해 현재의 ExxonMobil이 되었다. ExxonMobil은 전세계에서 가장 큰 매출액(2007년 기준, 4045억 달러)과 순이익(406억 달러)을 자랑하는 기업이다.
- SOIN은 Amoco로 개명하고 연매출액 2914억 달러, 연간 순이익 206억 달러를 자랑하는 전세계 4위 기업 BP의 일부가 되었다. SOOH는 역시 BP에 인수되어 미국 판매 지사 역할을 수행했다. Standard’s Atlantic 역시 BP와 Sunoco의 일부가 되었다.
- SOCA는 SOKY를 인수하여 현재의 Chevron이 되었고 현재 이 회사의 연 매출액은 2209억달러, 순이익은 186억 달러이다. Chevron은 수년째 전세계 랭킹 5위 자리를 놓고 General Motors 그리고 Toyota와 다투고 있다. 2006년엔 7위였다.
- Continental Oil Company은 후에 이름을 Conoco로 개명하고 현재의 ConocoPhillips의 일부가 되었다. ConocoPhilips는 1944억 달러의 매출액과 118억 달러의 순이익 (올해 순익이 많이 줄어서 그렇지, 작년엔 155억달러였다)을 자랑하는 세계랭킹 9위의 기업이다.
이 회사들의 2007년 매출액을 다 합치면 11,112억 달러로 우리나라 전체의 GDP보다도 50% 가량 많다. 순이익은 916억 달러로 KOSPI 상장사들의 순이익을 합친것보다 2배가량 많다. 즉 Standard Oil이 우리나라 회사였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4.2만달러가 된다.
록펠러가 남긴 잔재만 해도 대한민국보다 규모가 크니, 록펠러의 제국이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슬슬 짐작이 가리라 믿는다. 록펠러는 생애 마지막 해 (1937년)에 미국 전체 부의 1.53%를 소유하고 있었다. 빌게이츠는 1999년에 잠깐 재산 규모가 1000억 달러를 돌파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미국 가계 순자산은 50조 달러 정도였다. 미국 전체 부의 0.2%를 소유한 빌게이츠보다 재산이 8배는 많았던 셈이다. (1930년대나 2000년대나 미국 경제가 전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1/3 사이로 크게 변하지 않았다)
화폐 가치 변화를 기준으로 록펠러 자산의 현재 가치로 추정해 보면 300조원 정도 규모밖에 안되지만, 부의 비율을 기준삼아 록펠러 현재 가치를 추정해 보면 800조원이 된다. 요즘 한국 가계 순자산은 2800조원 정도니까, 한국인 1250만명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도 재산이 많은셈이다. 현재 이건희 재산은 한국인 8만명 보다 작다. 빌게이츠도 한국인 80만명만 못하다.
근데 사실 가장 멋진건 따로있다. 록펠러의 어릴적 꿈은 100,000 달러의 재산과 100세의 수명. 단 두가지였다. 록펠러는 1839년 7월 8일에 태어나 1937년 5월 23일에 죽었다. 100살을 다 채우진 못했지만 그래도 97년 이상 살았다. (한국 나이론 99살까지 살았다) 수명은 꿈꿔왔던 것보다 약간 미달했지만, 대신 재산은 초과 달성 했다. 1,400,000,000 달러를 모았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