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by Hanjun on Dec.22, 2007, under Barrel
어머니나 할머니가 하시는 이야기 중에는 소중한 진실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할머니는 언제나 활기 넘치는 현명한 노인이었다. 할머니는 한 손가락을 치켜들고 나에게 라디오 소리를 줄이라고 지시하곤 했다. “그런 요란한 소리를 계속 들으면 귀머거리가 된단다.”
어떤 날 아침에는 창밖으로 붉은빛 하늘을 내다보고 날씨를 예보하기도 했다. “아침에 하늘이 붉으면 뱃사람들은 조심한단다.” 할머니는 자주 글로 쓰여지지 않은 백과사전을 들추곤 했는데 거기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진 지혜 ㅡ할머니가 1904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올 때 짐 속에 담아온 “알려진 사실들”ㅡ 가 담겨 있었다.
3대가 함께 사는 것이 보통이었던 뉴욕 우리 동네에는 할머니 말고도 이런 전래 지식을 지니고 있는 분이 많았다. 옆집 필즈 할머니도 독일에서 똑같은 지식을 가지고 왔고, 조금 위쪽의 피셰티 할머니는 이탈리아에서 왔으며, 프리드먼 할머니는 러시아에서 온 분이었다. 또 필리핀에서 온 델레온 할머니, 중국에서 온 퐁 할머니도 있었다.
이 할머니들은 좋은 일은 끌어들이고 병같이 나쁜 일은 쫓아버리기 위해 예부터 전해오는 충고를 많이 간직하고 있는 분들이었다. 옛날에도 의사는 있었지만 치료비가 비쌌으며 또 우리 할머니 말로 그들은 예부터 전해오는 지혜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고 했다.
속담, 민속, 미신이 뒤섞인 채 들어 있는 이 주머니는 뭉뚱그려 “수다쟁이 노파의 이야기”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용어는 약 2400년 전 플라톤의 작품에서도 발견되는 아주 유서 깊은 말이다. 거의 모든 언어에는 이와 비슷한 말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최근에 텔레비전과 의학의 발전, 그리고 인터넷이 맹위를 떨치면서 할머니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오늘날에는 어떤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최종적으로 하는 말이 “그건 할머니 말씀이야”가 되었다. [옥스포드 영어사전]은 이 말을 “비과학적이거나 부정확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전통적인 믿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할머니 얘기들은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형태로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 한가지 이유는 그런 이야기들 가운데 일부 ㅡ예를 들면 요란한 음악소리에 관한 우리 할머니의 충고ㅡ 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이팟에서 울려나오는 요란한 음악이나 시끄러운 소리를 계속 들으면 내이(內耳)에 있는 작고 민감한 유모세포가 손상을 입어 영구적으로 귀가 멀 수도 있다. 락스타에게 물어보면 아마 그 사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할머니 얘기가 어떻게 처음 시작되었는지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할머니 얘기의 기원은 그 얘기 자체만큼이나 다양합니다. 의학상식이나 약품은 수천 년 전부터 문화권 안에서 또는 문화권을 넘나들며 교류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옥스포드 브룩스대학 교수이며 [할머니 얘기]의 저자인 메리 체임벌린의 말이다.
우리 할머니의 폭풍우 예보는 노르웨이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다. “아침에 하늘이 붉으면 뱃사람들이 조심한다”는 얘기는 수천 년 전부터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할머니 얘기 가운데 하나다. 이 얘기는 성경에도 나온다. 그리고 이 말은 과학적 원리에도 부합한다. 미국 해양대기국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 옛이야기는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말입니다. 즉 고기압과 저기압의 이동, 그리고 대기가 깨끗하냐 더러우냐에 따라 햇빛이 산란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할머니가 우리에게 겁을 주지 않는 날은 별로 없었다. “점심 먹은 후에 수영하러 가지 마라. 쥐가 나서 물에 빠져 죽을 지도 모른다!” … “어두운 데서 책을 읽지 마라. 시력이 나빠진다!” … “머리가 젖은 채 밖에 나가지 마라. 감기에 걸린다!” 이런 말은 모두 틀린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해로울 것은 없는 말이다.
그렇다, 전반적으로는 틀리는 말이다. 하지만 전적으로 틀리다고 할 수도 없는게 사실이다. 예를 들면, 식사를 한 직후에 수영을 하면 위경련이 일어나서 익사할 위험이 있다는 말은 부분적으로 옳은 말이다. 하지만 요즘의 일치된 견해는 식사 후에 물에 들어가도 해롭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힘차게 헤엄을 치려면 먹은 음식을 소화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어두운 데서 책을 읽는다고 눈이 나빠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으면 눈이 피로해지고 그래서 책을 계속 읽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과학자들은 1세기 넘게 젖은 머리와 감기의 연관성을 부인해 왔다. 그러나 이 속설은 아직도 세계 여러 곳에서 통용되고 있다. 사실 감기를 일으키는 것은 추운 날씨나 젖은 머리 또는 냉기가 아니라 바이러스다. 사람들이 겨울에 더 자주 감기에 걸리는 것은 감기 바이러스가 대개 공기가 따뜻하고 정체되어 있는 실내에서 더 잘 퍼지고 또 실내에서 우리는 감기에 걸린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라질이나 태국, 스웨덴에 이르는 곳곳의 할머니들은 여전히 젖은 머리를 보면 감기에 걸린다고 혀를 내두른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속설을 믿는 것일까? 한 가지 이유는 우리가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증조할머니들로부터 듣는 말을 믿도록 가르침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제 생각으로는 남녀를 구분하면서 남성은 우월하고 여성은 그만 못하다고 했으니만큼 여자들에게도 뭔가 남겨줄 필요가 있었을 거라는 것입니다.”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레이 브라운의 말이다. “실용적인 지식은 남성의 몫이 되었으니 여자에게 남겨줄 것으로 가정에서 유용한 지혜 이상 더 좋은 것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사실 할머니 얘기는 여러 모로 남자들의 영웅적 지혜보다 우월했지요. 그런 얘기는 생명력을 유지하는 힘을 가지고 있던 반면에 남자들의 지식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지 못했으니까요.”
내 이마에 의심이 빛이 떠오르는 것을 본 할머니는 흘러내린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난 네가 아들이라는 걸 알았단다. 네 엄마 배가 아래로 처져 있었거든.” 태아의 성별을 예측하는 것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할머니들의 단골 메뉴였다. 이 메뉴의 좋은 점은 맞힐 가능성이 적어도 50%는 된다는 것이었다.
세계 어디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또다른 할머니들의 메뉴는 습기가 많고 축축한 날씨에는 관절염이 악화된다는 것이었다. 이 메뉴의 좋은 점은 뒤집어 말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관절이 쑤시는구나. 비가 오려나 보다.”
이에 대한 설명은 육체적인 데보다 정신적인 데 있을지도 모른다. 관절통은 수시로 나타나지만 날씨가 좋을 때는 통증이 나타나도 기억되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궂은 날씨에 통증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 일은 당연히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즉 궂은 날씨에 나타난 통증은 자꾸 생각나고 그 반대의 증거는 무시되는 것이다.
우리 할머니는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한 시각장애인이 유난히 민감한 청각을 타고났다고 믿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많은 시각장애인들은 한 가지 감각을 잃은 것을 주의를 기울여 듣는 법을 배움으로써 벌충하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이 더욱 날카로운 청각을 타고나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기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보상을 받는다는 생각을 우리가 하게 된 것은 아마 우주는 질서있고 공평하며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최선의 방향으로 결만난다고 믿으려는 우리의 욕구 때문일 겁니다.” 1990년에 [할머니 얘기의 허실]을 펴낸 알피 콘의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각장애인들이 더욱 민감한 청각이나 촉각 또는 신비스런 육감을 타고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멕시코와 한국은 서로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두 나라의 소년소녀들은 다 같이 털을 면도칼로 밀면 그러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털이 난다는 말을 들어왔다. 이런 잘못된 생각은 처음에는 솜털을 밀기 시작하는데 이 솜털이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굵어지기 때문에 생겨난 것일 것이다. 굵어진 털을 보고 사람들은 털을 깍았기 때문에 더 굵은 털이 나오게 된 거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렸으리라.
우리 할머니는 홍당무를 먹으면 시력이 좋아진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이 속설은 가장 최근에 나온 할머니 얘기 중 하나다. 학자들은 이 속설이 2차대전중에 생겼을거라고 생각한다. 영국은 자국의 조종사들이 새로 개발된 레이더를 사용해 적기를 찾아내고 있다는 것을 독일군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영국 공군 조종사들이 홍당무를 많이 먹어 밤눈이 밝다는 소문을 퍼뜨렸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한 우리 할머니의 반론은 아주 단순했다. “너 토끼가 안경 쓴 거 봤니?” 할머니는 얼굴에 미소를 활짝 띠며 이렇게 반문하곤 했다.
출처 – Reader’s Diegest
